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 (문단 편집) ==== 경제 파탄 ====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Pobreza_en_GBA_Argentina_1965-2005_%28PRN%29.png|width=100%]]}}} || || △ 아르헨티나의 1965년부터 2005년까지 빈민율 수치. 적갈색의 PRN이라고 써있는 부분에서 빈민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 || 1976년 || 1977년 || 1978년 || 1979년 || 1980년 || 1981년 || || -2% || 6.9% || -4.5% || 10.2% || 1.5% || -5.2% || △ 비델라 집권 시기 아르헨티나의 GDP 성장률 아르헨티나는 19세기 세계 10대 경제대국이었고, 대공황의 타격을 받아 경제가 무너지긴 했지만 1929년 대공황 이후에 집권한 페드로 후스토(Pedro Justo) 정권 시절에 들면서 국민소득이 서서히 오르고 있었고, 후스토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후안 페론]]이 빈민구제정책과 복지정책을 병행하는 페론주의 정책을 펼치면서 빈부격차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러나 호르헤 비델라의 실정과 경제부 장관 호세 마르티네즈 데 호즈[* José Martínez de Hoz, 1925~2013. 비델라가 집권한 모든 기간 동안 경제부 장관을 역임했으며, 기묘하게도 비델라와 생몰년이 완전히 똑같다.]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패로 국내의 산업기반은 완전히 붕괴되버렸으며, 외채는 5년 동안 4배, 빈민율은 6배 이상 증가한 데다가 그 영향으로 아르헨티나는 오늘날까지도 초인플레이션과 외환위기가 빈발하고 있다. 그나마 비델라 집권 시기에 물가 상승률은 이사벨 페론 집권기보다는 대폭 낮아졌고 10%대의 경제성장률이 나온 적도 있었지만, 이것 또한 단기성에 그쳤다. 실제로 비델라 정권에서의 경제정책은 대실패라고 볼 수 있었다. 우선, 비델라 이전의 아르헨티나의 빈곤율은 1940년대부터 10% 이하인 상태를 계속 유지했고, 1974년에는 5.8%이라는 낮은 수치여서 낮은 빈곤율은 '아르헨티나의 자랑거리'처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나 이렇게 낮았던 빈곤율이 비델라의 퇴임 1년 전인 1980년에는 무려 37.4%가 되었는데, 이는 당시까지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 수치의 빈곤율이었다고 한다. 실업률도 비델라가 쿠데타를 일으키기 반년 전인 1975년 10월에는 3.8% 정도였지만, 1982년에는 무려 18%까지 상승했다. 아울러 비델라 집권 1년 전인 1975년에 78억 달러 정도였던 외채가 군사 정권이 완전히 붕괴한 1983년에는 무려 450억 달러로 늘면서 아르헨티나는 GDP 대비 외채 비율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최고치를 자랑한 국가 중 하나가 되었으며,[* 1975년의 아르헨티나: GDP 524억 달러, 외채 78억 달러, GDP당 외채 비율 약 14.5% / 1983년의 아르헨티나: GDP 1040억 달러, GDP당 외채 450억 달러, 외채 비율 약 43.2%. 한마디로 8년 만에 GDP당 외채 비율이 '''3배'''나 뛰어올랐다.] 1980년에 수출은 전년 대비 20% 감소한 반면 수입은 전년 대비 30%가 증가했다. 심지어 쿠데타가 일어난 1976년부터 1982년까지 6년간 아르헨티나에서는 무려 40만 개가 넘는 회사가 파산했으며, 1980년에는 3월에 지역외환은행(BIR)이 파산한 것을 시작으로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4개의 은행을 포함한 37개의 금융 기관이 파산하고 은행 예금의 25%가 소멸했다. 물론 빈부 격차도 칠레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전보다 크게 늘었는데, 실제로 아르헨티나의 [[지니 계수]]는 1975년의 0.365에서 1982년의 0.423으로 늘었다. 그나마 비델라가 집권한 해인 1976년에 438.3%였던 물가상승률은 1981년에 105.3%로 낮아지긴 했지만, 비델라 퇴임 3년 뒤인 1984년에는 1976년의 물가 상승률을 넘어섰고, 1986년에는 다시 물가상승률이 낮아지긴 했지만 이것 역시 다시 증가한 끝에 1989년에는 '''3046.1%'''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면서 그 최소한의 업적조차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그 이후로도 아르헨티나는 만성적인 인플레이선에 시달리는 나라가 되었다. 1989년 이후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은 이전에 비해서는 계속 낮아져 2022년 현재 물가상승률은 71% 정도인데, 71%라는 물가 상승률도 매우 높은 수치다.] 또한 비델라 정권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명목으로 임금 동결 조치를 빈번하게 내렸고, 결국 수요 감소에 대응하지 못한 많은 지역 소매업체들이 파산하게 되면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생활 수준은 더욱 비참해졌다.[* 실제로 1977년은 노동자의 실질 급여가 전년 대비 40%로 감소했다고 한다.] 비델라가 물러난 이후에도 군사정권의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고, 민주화 이후 [[라울 알폰신]] 민선 대통령이 아우스트랄 프로젝트 등 정말 별의 별짓거리를 다해도 경제는 전혀 회생하지 못했다. 이후에도 [[카를로스 메넴]]을 위시한 모든 아르헨티나 대통령들이 총력을 다해 경제를 되살리려 노력했지만 비델라를 비롯한 군사정권이 망쳐 놓은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조금 나아지나 싶으면 터지고 또 회복되는가 싶으면 재발하는 고질병에 시달리게 되었고 그러한 악영향이 쌓이고 쌓인 결과 최근 [[하비에르 밀레이]] 등 강경 우파 정치인들이 대선 유력 후보로 급부상하여 대통령에 당선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